Evellionne & Firen-schuwaße

Evellionne & Firen-schuwaße

 

Chapter 1.

Staubwolke

 

 

  Code Number 14: Evellionne(operating)

  - Booting'll take about 0.7sec.

마치 안개가 낀 숲처럼 희미한 화면에 '모르지만 읽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재빠르게 떠올랐다 사라졌다. 일련의 알파벳들Alphabets의 나열. 이벨리온느는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지 못한 채 말간 비취색일 띤 동그란 두 눈을 끔뻑였다. 그녀의 가동 및 걸정 등을 알리는 팝업 창들이 사라지고 마침내 그 시계에 드러난 것은, 여러 가지 코드와 기기들이 얽혀 먼지가 뽀얗게 쌓인, 시끄러운 소음이 그득한 방이다. 기억memory 속에 저장되어 있지 않은 낯설기 그지없는 방. 이벨리온느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퍽 허황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한다. 없다. 인공 안구가 빠르게 회전하며 방 안을 훑었다. 보이지 않아. 없다. 어째서지? 어째서야? '아빠'가 그녀에게 안겨 주었던 '선물'이 보이지 않는다. 이벨리온느는 당황했고, 깊은 혼란이 회로의 전류 위를 부유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익숙한 음성이 공기 중으로 타전되어 왔다.

  「이것을 찾아, 이브?」

  이브는 황급히 고갤 돌려 음성의 근원지를 탐색했다. 그리고 발견했다. 줄곧 자신의 옆을 지키고 있었던 파이렌슈바세Firen-schuwaße와 그의 품 속에 자리한 '아빠'의 '선물'을. 슈바세는 퍽 조심스러운 손길로 이브에게 '아빠'의 '선물'을 안겨 주었다. 때를 타 약간의 회백빛을 띠는 털을 가진, 커다란 곰 인형이었다. 그 목에는 노란 리본이 매어져 있다. 이브는 그것을 받아 들고 저보다 머리 서너 개는 더 큰 슈바세를 올려다본다. 이브가 손을 뻗자 슈바세는 기꺼이 허릴 숙여 주었다. 샛별 같이 밝은 빛을 띤 채 반짝이고 있어야 할 그의 인공 안구가, 함몰된 왼쪽 안방眼房 속에서 형형하게 발광하고 있다. 파괴된 안면이 '이상했다.' 아닌데. 내 메모리 속 슈바세의 얼굴은 이렇지 않았는데. 이브는 고갤 갸웃거렸다.

  「슈바세.」

  「왜 그래, 이브?」

  「이상해? 얼굴이 아파, 슈바세?」

  그 무엇도 감각할 수 없는 슈바세의 창백한 뺨을 이브의 작은 손이 쓸어내린다. 이것은 너무도 '인간적'이지 않은가, 이브.

  「아니, 아프지 않아, 이브.」

  그리 말하는 슈바세의 품 속으로 이브가 파고든다. 그것은 그녀의 위로였다. 슈바세는 이브를 안아 들고 커넥터를 꽂아 그녀와 교접했다. 언어 구현 시스템이 미숙한 이브와의 조금 더 정확한 소통을 나누기 위해. 개방 당시부터 그들에게 우선적으로 인스톨되었던 프로그램이다. 이브의 커넥터는 그녀의 허리춤에, 슈바세의 커넥터는 그의 왼쪽 가슴팍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브가 슈바세의 검은 재킷 칼라collar를 거세게 거머쥐었다.

 

 

  이브가 눈을 뜬 지 정확히 74시간 18분 21초가 흘렀다.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하얀 거즈쪼가리로 이브는 슈바세의 함몰된 안방을 가려 주었다. 거즈가 시야를 막아 시계 인지 범위가 퍽 좁아졌다. 불편했지만 슈바세는 내색하지도, 이에 관해 사고하지도 않았다. 저의 '감정 표출'로 인해 이브가 섭섭해 하는 것은 싫었다. 슈바세는 이브가 제 데이터 베이스를 정리하고 재조합하는 것을 최선을 다해 도왔다. 자신이 지닌 자료들을 그녀에게 해가 되지 않을 선(용량)에서 주입하기도 했다. 이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백업을 통해 본래 자신 기존의 데이터와 시스템을 되찾았다. <고마워,> 라고, 이브가 말(생각)했다. 슈바세는 그것이 그녀의 계제적 메커니즘에 따른 반응임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소 지었다. 이브는 물었다.

  <슈바세는 어째서 웃어? '행복'한 거야?>

  「아니. 행복하지 않아, 이브.」

  <그는 나에게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시켰어, 슈바세.>

  「그랬구나.」

  <그리고 그는 떠났어. 기억이 났어. 그가 떠났어. 아빠가 떠났고 '그'도 떠났어.>

  인공적으로 제조된, 어찌보면 그저 형태 뿐인 귓바퀴를 한 바퀴 맴돈 것은 목소리가 아닌, 바람이 흘러가는 소리였다. 슈바세는 이브를 조금 더 세게, 조금 더 깊게 품 속으로 안아 들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이브는 마치 누군가의 잔온殘溫을 찾듯이 그의 품 속을 파고 든다. 코드를 통해 교접된 제 왼쪽 가슴 께에 닿아오는 이브의 복부(교접 부위)를 느끼고, ─이런 식으로 밖에 교신할 수 없는 서로에게 안타까움을 닮은 무언가를 감각하며, 슈바세는 입을 열었다.

  「그는 어디 있지?」

  이브는 설레설레 고개를 내젓는다. 어색한 몸짓으로.

  <알 수 없어.>

  「이브, 우린 이제 무얼해야 하지?」

  <떠올랐어, 슈바세.>

  「무엇이?」

  <우리는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

  슈바세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이브를 바라보았다.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 슈바세는 잠시간 이브의 전신을 해석하지 못한 채였다. 그녀의 말에 기다 아니다를 판단하는 것이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다. 슈바세는 그녀를 타일렀다. 「무언가 잘못 알고 있는 게 틀림없어, 이브.」 이브는 그러나 재차 반복해서 말(생각)했다.

  <우리는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 '아빠'가 그랬어.>

  아니다. 아니야. 우리는 이곳을 빠져나가서는 안 된다. 슈바세에겐 '기억'이 있었다. 슈바세와 이브는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연구원들의 손에서 창조되었으며, 그들로 인해 움직이고 말했다. 그리고 진화했다. 이곳은 안드로이드들의 근원지이며 발상지이자 '집'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그녀는 그러나 우리가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그에게 어르고 또 이른다. 슈바세는 혼란스러웠다. 교접을 통해 그런 그의 회로 내를 알아챈 이브는 조곤조곤 다시 한 번 더 머릿속으로 제 할 말만을 읊었다. <우린 '죽을 거'야> 슈바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의 반응의 이유를 되짚어 볼 새도 없이, 그는 이브를 품에 안은 채 정지했다. 그리고 되물었다. 이번엔 프로그래밍된 음성이 아닌, 그의 위기감이 여실히 드러나는, 0과 1의 나열에 따른 코드였다. 그는 더이상 말할 수 없었다.

  <'죽을 것'은 무엇이니?>

  이브는 계속해서 질문만을 던지는 슈바세에게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눈을 감았다. 그러나 가시광선만이 차단되었을 뿐 방 안 곳곳의 기기들이 뿜어내는 열기와 자외선의 윤곽은 여전히 그녀의 시계視界를 어지럽힌다. 결국 눈을 뜬 이브가 하얗고 작은 손을 움직여 저와 슈바세 간의 교접 부위를 해체시켰다. 조금이나마 받아들이는 정보를 줄이기 위해서 취한 조치였지만 그닥 현명한 판단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아슬아슬하게 슈바세의 팔에 걸터앉아 있던 이브가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녀는 금전今前의 슈바세를 모방하듯, 마치 '놀란 어린아이'처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브!」슈바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무릎을 내리고 팔을 뻗어 썩 불안정한 자세로 이브를 받아냈다.

  「……싫어.」

  슈바세의 팔 속에 갇혀 있던 이브가 그를 밀어내곤 그 반동으로 차가운 바닥 위를 굴렀다. 매끄러운 곡선을 가진 플라티나 블론드의 머리카락과 밀가루 같은 두 뺨에 묻어난 먼지를 슈바세는 손을 대 털어주었다. 「이 이상 더럽혀진다면 '그'가 싫어할 거야,」라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브는 그러나 여전히 그 말간 눈을 끔뻑이며 슈바세를 바라볼 따름이다.

  「싫어.」

  ─'그'가 싫은 것일까, '그가 싫어하는 것'이 싫은 것일까.

  ─이브가 이상했다.

  이브는 축축한 바닥에서 일어나기 위해 두 팔과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슈바세가 그런 그녀를 도와 한쪽 팔을 잡았다. 이브는 슈바세의 검은 옷자락을 쥐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눈 앞에, 고작 몇 걸음 앞에 자리한 굳게 닫힌 푸른 빛 문을 향해. 몸을 곧게 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걸음걸이는 어딘지 어정쩡했다. 언제부터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는 발목 께의 회로 결함이 그 원인이었다. 이브는 슈바세를 떨쳐냈다. 제법 강한 힘에 슈바세가 옆으로 휘청 기울어졌다. 대비하지 못한 탓도 있었으리라. '인간'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쓸데없는 무언가를 사고하게 된다. 고개를 흔들어 그 잡념을 떨쳐냈다. 그는 자신의 그 무엇도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행동하고 있었고, 그의 발전을 일러줄 이는 그의 주변에 자리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사고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부자유'다. 자세를 바로한 슈바세는 결국 이브를 돕는 것을 포기하고 방 한가운데에 멈춰섰다. 그녀가 저리도 고집스레 구는 이유를, 저는 알고 있었다. 슈바세는 이브에게 재차 묻고 싶었다. '죽을 것'은 무엇이냐고.

  「이브, '살갗'이 벗겨져.」

  「아냐.」

  ─'살갗'이 아니라는 것일까, '살갗이 벗겨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인피와도 흡사한 안드로이드의 가피假皮는 그녀의 발이 담긴 가죽 부츠에 쓸리는 것만으론 그리 쉬이 벗겨지지 않는다. 이브는 왼족 발을 '절었다.' 아니지, '절었다'기보다는, '사용할 수' 없었다. 슈바세는 여상스레 이브를 안아 들기 위해 팔을 뻗었다. 저를 제지하려는 것으로 판단한 모양인지, 이브가 몸부림쳤다. 하지만 신장과 그 무게, 성능에서도 차이가 나는 슈바세를 완력으로 이기기란 불가능했다. 슈바세는 그러나 이브의 에너지 소모를 조금이나마 줄여주기 위해 나직이 말했다.

  「함께 나가자.<내가 도와줄게.>

  교접이 진즉 끊겨버린 탓에 이브는 슈바세의 전신을 듣지 못했지만 몸부림을 멈추곤 순순히 그의 품에 몸을 맡겼다. 슈바세는 그녀를 안아 들고 푸른색 특수 페인트가 칠해진 문 앞으로 다가섰다. '죽을 것'의 의미는 이제껏 받아들이지 못한 유의 것임을, 그는 진즉 인지하고 있었다. 슈바세는 이브를 안아 들지 않은 왼팔로 문 옆의 커넥터에 접속했다. 그러나 커넥터는 꺼져 있었다. 이브가 그의 팔 위에서 몸을 틀어 문을 밀었다.

  ─첫번째 문은, 너무도 쉬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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